어젯밤 나는 컴퓨터 앞에서 기분이 좋았다. 이미 아배붑이 내 무릎 위로 올라와 있었는데, 들꽃까지 합세했기 때문이다. 무릎 위에 고양이 두 마리는 한 마리보다 조금 더 기분이 좋다. 두 마리라서, 두 마리만큼 더 오랫동안 편안히 있을 수 있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두 녀석이 한 번에 무릎 위로 올라온 건 꽤 오랜만이라 반갑기도 했다. 반가움을 넘어 고마웠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 때의 이점 리스트를 인터넷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데, 내가 지금 그 이점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을, 들꽃의 표정을 보며 그리고 그 얼굴을 쓰다듬으며 했다.
작은 상처는 키보드 위에 착석해 나를 올려다 본다. 뭔가 항의할 것이 있을 때, 보다 적극적인 스킨십으로 행세하는 아배붑에 비해, 나를 올려다보고 웅얼거리는 정도로 그치는 소극적인 태도의 작은 상처가(어디까지나 '아배붑에 비하면'이다) 불현듯 책상 위로 뛰어올라 모니터를 가리고 키보드 위에 앉아버리는 것이 좋다. 평소 내게 기대어 오는 횟수가 가장 적은 녀석이기에.
별달해는 언젠가부터 나와 함께 자는 걸 좋아한다. 정확한 날짜는 몰라도 한창 더웠던 여름 때부터였으니 별달해가 나와 잠자리를 함께 하는 걸 선호하게 된 것이 쌀쌀해진 날씨 탓은 아닐 것니다. 별달해는 내가 자러 간다는 걸 알고 있는 것 같다. 기다렸다는 듯 잠자리에 드는 내 발걸음을 따라 모기장 안으로 함께 입장 한다. 나는 별달해가 모기장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손으로 모기장을 들어올려 준다.
-그치만 별달해는, 들꽃처럼 내 가슴팍으로 올라와 식빵을 굽는다든지, 옆구리나 겨드랑이 또는 사타구니나 종아리 사이에 끼어 자지는 않는다. 별달해는 내 발목에 턱을 괴고서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느낌으로 자리를 잡아본다든가, 내 다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낑겨 앉아 본다거나 하는 식의 시도를 꾸준히 하는 편이기는 하지만(나는 이때, 별달해가 정말 편안하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뭐가 불만족스러운지 이내 자세를 풀고 일어나버린다. (나는 이때, 어디까지가 내 탓일까 하고 미세하게 심란해진다) 별달해가 향하는 곳은 내 정수리나 내 뺨 바로 옆이다. 때때로 발바닥이나 허리춤에 근접해 있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내 정수리나 뺨 쪽이다. 들꽃이나 아배붑처럼 서로의 체온을 나눌 만큼 밀접하게 몸을 맞대고 있는 것은 아닌데, 또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거리감을 두고 있는 것도 아닌, 생각해보면 밀접한 것에 가까운, 뭐 그런 위치다. 몸이 닿지는 않지만 둘 중 누구라도 조금만 자세를 틀면 몸이 닿는다. 별달해는 딱 그 거리감으로 내 정수리, 내 오른 쪽 뺨, 내 왼 쪽 뺨을 왔다 갔다 한다. 그 과정에서 나는 별달해를 계속 만져준다. 그러다 잠에 든다.
이제 겨울이 되면 고양이들이 곁으로 더 자주 올 것이다. 서로 따뜻하게 기대서 잠에 들 것이다. 그 예상에 겨울이 기다려진다. 정남향인 우리 집 거실로 햇빛의 기울기가 점점 느슨해져 온다. 어느 날 눈을 떴을 때 작은 상처나 별달해가 내 몸 위에 올라와 있거나 또는 내 몸에 기댄 채 있는 것을 마주하게 되는 일을 더 많이 기대해본다. 그리고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 네 녀석 모두가 한 공간에서 적절히 어그러져 자는 그림이 벌써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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