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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MAD GAY DIARY56

얼굴이 작은 고양이 얼굴이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있다. 고등어 무늬의 길고양이다. 그 녀석은 날 알아본다. 처음엔 여러 마리의 길냥이를 거느리는 캣대디가 되어볼 목적의식 같은 게 있었으나 며칠 못가 포기했다. 녀석들과 처음으로 만난 게 새벽 세 시였고 그 다음, 또 그 다음에도 그렇게 만났기 때문에 점차 건강한 생활을 위해 삶의 방향을 수정 중이었던 내게 그들과의 지속적인 조우는 어려웠다. 게다가 츄르는 비싸다. 물론 가끔은 값싼 캔이나, 집 냉장고에서 꺼내온 동물복지 난각번호2번짜리 계란을 깨서 노른자를 종재기에 담아 먹이기도 했다. 샛노란 눈 외엔 칠흑 같이 깜깜한 색의 올블랙냥이, 흰색주황색냥이, 엄마로 보이는 삼색냥이, 그리고 고등어냥이. 녀석들은 남매가 분명해 보였다. 난 사실 달빛 같은 눈동자만 둥둥 떠다니는 .. 2024. 10. 19.
최후의 만찬 쿠팡이츠에서 크루아상을 이만 원어치 시켰다. 커피빼면 만사천 원어치다. 이건 내 최후의 만찬이다. 더 이상 이런 거 먹지 않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오늘이 마지막이다. 생일 아니면 안 먹는다. 사람이 ‘각오’하는 것만으로도 뇌 모양이 바뀐다고 그러던데 지금 내 뇌 모양 바뀐 거 맞겠지? 안 먹을 거야. 안 먹을 거라고. 그니까 오늘 맛있게 먹어야겠어. 이 크루아상 집은 최근에 발견한 집인데, 주문하면 바로 만들어서 배달이 되는 듯하다. 지금까지 세 번 주문해봤는데 매번 따뜻하고 바삭하게 온다. 그리고 너무 맛있다. 나는 원래부터 바삭바삭한 크루아상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이 맛있는 가게를 최근에서야 알았으니 조금 안타깝기도 하다. 하지만 건강한 삶이야말로 그 모든 걸 아득히 뛰어넘는 절대적 가치이며 나는.. 2024. 10. 12.
달리기 아이폰 건강앱 알림이 떠서 봤더니 걷기+달리기 거리가 5주째 증가 추세다. 이 데이터를 보니 애플워치를 사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가뜩이나 무거워 죽겠는데(아이폰13미니가? 정확하게는 거치적거려서 들고 나가기가 좀 그렇다) 애플워치 울트라 셀룰러 모델로 하나 딱 사가지고 차가지고 달리면 좋겠다. 애플뮤직도 된다던데 워치랑 에어팟만 있으면 딱일 것 같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 쓸 데 없이(정말?) 한 눈을 파는 이러한 나의 사고회로는 물론 내 경제적인 삶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난 왜 이럴까. 바보 같다. 하여튼간 벌써 등산 or 달리기를 한 지 한달이 넘었다. 작은 것 하나를 시작 했을 때 그게 점점 커지고 분화 되고 또 다른 무언가를 상쇄하고 그런 과정 안에 요즘 내가 있다. 2024. 10. 7.
겨울 풍경 어젯밤 나는 컴퓨터 앞에서 기분이 좋았다. 이미 아배붑이 내 무릎 위로 올라와 있었는데, 들꽃까지 합세했기 때문이다. 무릎 위에 고양이 두 마리는 한 마리보다 조금 더 기분이 좋다. 두 마리라서, 두 마리만큼 더 오랫동안 편안히 있을 수 있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두 녀석이 한 번에 무릎 위로 올라온 건 꽤 오랜만이라 반갑기도 했다. 반가움을 넘어 고마웠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 때의 이점 리스트를 인터넷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데, 내가 지금 그 이점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을, 들꽃의 표정을 보며 그리고 그 얼굴을 쓰다듬으며 했다. 작은 상처는 키보드 위에 착석해 나를 올려다 본다. 뭔가 항의할 것이 있을 때, 보다 적극적인 스킨십으로 행세하는 아배붑에 비해, 나를 올려다보고 웅얼거리는 정도로 그치는 .. 2024. 10. 3.
우울한 이유 찾고 싶은 사진(아배붑이랑 들꽃이 나무 계단을 내려오다가 새소리가 들려 동시에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진)이 있는데 대체 어느 폴더에 있는지를 몰라 한참을 뒤적였다. 완전 오래전이기는 한데... 그 덕에 그때쯤 찍었던 사진들을 쭉 훑어봤다. 결국 그렇게 그 사진을 찾는 건 포기하고 그냥 천천히 계속 훑어봤다.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프지. 왜 이렇게 착잡하지. 왜 조금 우울해지지. 그러다가, 그러다가, 이번엔 이유를 알고 싶어서 한참을 골똘히 내 안의 마음상자를 들여다봤다. 내가 달라지지 않아서였다. 내가 그대로 궁핍해서였다. 내가 여전히 꾸역꾸역 살아가는 중이라. 만약 지금 그때보다 더 멋진 사람이 되어 있는 채로 그 사진들을 보는 중이었다면, 나는 똑같이 우울함에 빠진다 한들 한결 마음은 가벼웠을 것이다. .. 2024. 9. 26.
추석에 마트는 쉰다 마늘이랑 냉동블루베리, 락토프리 우유 등을 사기 위해 두세 시간을 뻐팅기고 널브러져 있다 나왔는데 마트가 쉰다. 베스킨라벤스에서 우석이도 외계인이라는 신상 민트초코를 싱글킹 사이즈로 구매 후 입에 물고 정처 없이 돌아다녔다. 얼마간 돌아다니니 손이 끈적끈적해졌다. 아이스크림이 생각보다 빨리 녹았다. 지에스이십오에서 냉동블루베리 삼백그램짜리랑 그냥 우유 두 팩 세트(더 싸서. 락토프리 아니어도 속이 괜찮을지 간만에 실험도 할겸), 펩시제로 라임 오백미리 두 개(원플러스원) 사서 나왔다. 오늘도 어김 없이 등산을 했다. 오늘 좀 늦게 일어났는데, 늦게 일어난 김에 오늘을 기점으로 쉬는 날을 만들까 하다가 그것은 곧 영원한 휴식이라는 걸 되새기며 등산을 강행했다. 강행이란 말이 웃기긴 하지만 어쨌든 산 한 바.. 2024. 9. 17.
얼굴에 송글송글 땀방울 내 얼굴에 가득 맺힌 땀방울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후두두 떨어져내리는 게 좋다. 이게 얼마만인가. 어두운 게 환한 것으로 바뀌고 불가능이 가능성으로 바뀌는 기분이다. 저 앞에 아배붑이 있고 내 뒤에 들꽃이 있던 산길을 회상했다. 어렸을 땐 날씨 상관 없이 무조건 고였는데 어른이 된 아배붑과 들꽃은 제법 날씨를 탄다. 서늘서늘한, 약간 차가운, 봄이나 가을이 딱인 것 같다. 어서 그 날씨가 와있기를 기다려야지. 2024. 9. 15.
달리기, 등산 삼일째다. 첫날과 둘째 날엔 달리기, 셋째날에 등산을 했다. 시작이 좋았다. 내내 덥다가 내가 달리기를 뛰러 나가기로 한 날부터 이틀간 밤낮으로 시원한 비가 쏟아졌고 덕분에 정말 간만에 비에 흠씬 젖은채로 달렸다. 비를 있는 그대로 맞으며 달리거나 자전거를 타는 일은 사람 기분을 좋아지게 만든다. 얼굴에 투두둑 부딪치는 빗방울들이 시원하다. 어제는 비가 그쳐서 노랗고 숨막히는 더위가 다시 찾아왔으므로 등산을 택했다. 내가 가는 코스는 나무가 우거져 대낮인데도 어두침침했다. 가다가 길을 잃어 무턱대고 정상을 향해 수직선으로 산을 타는 바람에 신발이고 옷이고 더러워졌지만(뭐 늘 그래왔다) 오랜만에 등산을 하며 숨차는 기분을 느끼니 좋았다. 정상에 다다랐을 때 사람들이 소원을 비는 돌무더기가 보였다. 나는 좀.. 2024. 9. 15.
헐렁거리는 분홍색 반팔 티 헐렁거리는 분홍색 반팔 티, 펄럭이는 회색 츄리닝. 빨간 색 오토바이. 짧은 머리. 빨간 색 가격표가 붙어있는 애호박 두 개가 들어있는 파란색 플라스틱 리어카. 그 앞에 보라색 바탕의 형형색색 무늬가 들어간 벙거지 모자와 깔맞춤 반팔을 걸친 할머니. 그 옆에 일 미터 정도 사이를 두고 앉아있는 할아버지. 연녹색 바탕의 노란 무늬가 들어간 가슴줄을 찬 웰시코기와 함께 달려가는 파란 색 반팔 티를 입고 있는 육십대 쯤 돼보이는 아저씨. 청록색 킥고잉을 타고 내 앞으로, 옆으로, 뒤로 달려가는, 흰티을 걸친, 귀에 코드리스를 낀, 까만 봉지를 든, 이제 막 보라색 간판 더 벤티로 들어가는, 키 백칠십 정도 돼보이는, 나보다 어려보이는 남자. 웃고 있는 초록색 마을 버스. 안 웃고 있는, 앞머리에 분홍색 헤어롤.. 2024. 9. 6.
신호등 가로수 밑 핀 풀 아무도 안 건드리니까 차라리 거기 있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대놓고 있어도 아무도 모르니까. 아무도 신경 안 쓰니까. 오히려 더 편할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그것이 부럽기도 하다. 나도 그곳으로 가 조용히 참여하고 싶다. 그냥 바람에 흔들리는대로 그대로 거기 박혀있고 싶다. 신호등 가로수 밑 핀 풀 곁으로 가서 불안해 하거나 의기소침해 하지 않고 편안하게 있고 싶다. 시끄러워도 시끄러운 게 아닌, 바람이 불어도 부는 게 아닌, 거기로 가서, 일말의 소속감을 느끼며 안정을 되찾고 싶다. 2024. 9.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