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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MAD GAY DIARY

할머니

by SHYGIMCHEOLSSOO 2023. 12. 6.

할머니. 할머니 그 쪼그라든 얼굴을 보고 아는 척 하지 못해서 미안해.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 해서 그랬어. 시간이 얼마 안 지난 것 같은데. 오랜만이긴 해도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난 건 분명 아니었던 것 같은데. 할머니 얼굴이, 내가 알던 그 얼굴이 아니라, 너무 많이 작아져 있었어. 움푹 패여있고 퀭하고 많이많이 시들어 있었어. 분명 눈물이 쏟아지는 걸 참아야해서, 아니 이미 참게 되어서, 왠지 그 순간을 들켰을까봐 나도 모르게 모른 척 해버렸어. 내가 너무 오랜만에 할머니를 보러 온 거에 자책감을 느꼈어. 그래서, 그간 내가 몰랐던 할머니의 모습을 한 번에 맞딱뜨려서, 그런 무심한 날 인정하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아무렇지 않는 척 자연스럽게 대해야겠다고 순간적인 판단을 내렸었어. 하지만 그 울컥 했던 순간을 넘기고 나면, 그냥 아는 척 할 걸. 그냥 할머니 얼굴 왜 그렇게 엉망이 됐냐고 큰 소리로 놀리듯 할 걸. 미안해. 그냥 아는 척 할 걸.

편의점 일하다 쉬는 시간에 잠깐 외부 소파에 누워 자는데, 할머니가 꿈에 나왔어. 할머니 얼굴이 불쑥 내 시야의 정면으로 튀어나와서는 내 얼굴에 뽀뽀를 퍼부었어. 괜찮아? 괜찮아? 뭐 그런 식의 대사가 들렸던 것 같은데. 아, 근데 그게 말소리로 들린 게 아니라, 단지 몸의 표현?이었다고 해야되나. 그런 따뜻한 온도?였다고 해야하나. 살갗에 느껴지던 에너지였다고 해야하나. 분명 그런 말을 들은 것 같은데. 그냥 그 말소리가 느껴졌었어. 귀에 들렸다라고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따뜻한 전달이었어. 엉엉 하고 울었어. 그렇게 목놓아 우는 경험은 꿈에서만 세 번째고 세 번 모두 할머니가 있었어. 두 번은 나 군대 가기 전 꿈이었고 그럴만도 했다 싶은데, 이번엔 이렇게 뜬금 없이 왜 이런거지. 현실에서 그렇게 카타르시스가 느껴질만큼 깊이 울었던 적이 있던가. 아주 어렸던 김슬기는 그랬었던가. 꿈에서 본 할머니 얼굴은, 딱 육십 대 쯤이었어. 할머니가 한창 건강할 때. 나를 보고 활-짝 웃어주는 그 얼굴이었어. 은빛으로 떼워져있는 할머니 치아도 보였어. 할머니가 내 얼굴에 끊임 없이 뽀뽀해줬어. 괜찮아? 괜찮아? 내 안의 에너지가 다시금 샘솟을 때까지 충분한 확신 같은 게 느껴졌었어. 너무너무 구슬프게 울었었어. 내 온 몸의 에너지가 우는 힘으로 기울어져 있어서 힘 없이 흐느끼기만 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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