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배붑. 내가 어쩌면 다 망쳐버렸는지도 몰라. 그냥 들꽃까지만 데려오고 말았어야 했는데. 너를 많이 어지럽게 만들었는지도 몰라. 내 괜한 욕심 때문에. 너 어렸을 때 모습만 떠올리면 마음이 왜 이렇게 아픈지 모르겠어. 이상하지. 너한테 최고로 잘해줬는데. 너네들 다 죽고 이 다음에 또 어떤 가족을 들인다고 해도, 그 친구들에겐 미안하지만, 그 열정과 정성의 깊이가 너한테만큼은 아닐거야.
아배붑. 너는 내 시간이 흘러갔음을 증명해주는 고마운 놈이야. 그래서 니가 죽는 게 두려워. 너는 내 가족이니까. 내 사랑하는 고양이니까.
아배붑. 사랑하는 아배붑. 자꾸자꾸 주절주절 늘어놓고 싶은 말이 많아지는, 우리 사랑하는 아배붑.
인터넷을 하다가, 천장에 난 유리창에 햇빛이 투과되어 바닥에 사각형 햇빛이 드리우는 집 사진을 본 적이 있어. 정말 크고 넓은 집이었어. 난 그 집이 부러웠어. 나도 언젠가 천장에 유리창이 달린 크고 넓은 집에서 살아야지, 라고 생각했었어. 그 사각형 햇빛 안엔 그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들이 나란히 들어가 쉬고 있었지.
아배붑 니가 그 햇빛 안에 들어가 있는 상상을 하곤 했어. 만약 정말 그렇게 된다면 넌 진짜로 거의 모든 경험을 한 세계 최고의 고양이가 될 거라고 속삭였어. 바로 '부잣집 고양이'라는 키워드 하나를 더 추가하게 되는 거지. 그리고 니가 죽기 전에 그 소망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고 믿었어. 사람 앞일은 모르는 거니까. 그리고 그땐 지금보다 시간적 여유가 더 많았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어쩌면 이 집이 너의 마지막 집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 썩 괜찮은 결말이야. 이 집은 너희들과 살기엔 충분히 훌륭하거든. 하지만 완전히 그렇다고 결론지은 건 아니야. 아직도 시간은 많지. 안 그래?
가끔씩은 너희들을 데리고서 지금껏 거쳐온 월세집들을 순서대로 들르며 딱 한 달 씩만 다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그 시간들을 다시 마주해보고 싶어. 그리고 이 집도 언젠간 다시 돌아가보고 싶은 곳이 되겠지. 그땐 내가 혼자이려나.
아배붑. 내 시작은 너였어. 내 모든 시간에 니가 있어. 니가 죽기 전에, 그 사각형 햇빛이 바닥에 드리우는 집에, 갈 수 있을까. 니가 그 안에 들어가 있는 모습이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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