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있다. 고등어 무늬의 길고양이다. 그 녀석은 날 알아본다.
처음엔 여러 마리의 길냥이를 거느리는 캣대디가 되어볼 목적의식 같은 게 있었으나 며칠 못가 포기했다. 녀석들과 처음으로 만난 게 새벽 세 시였고 그 다음, 또 그 다음에도 그렇게 만났기 때문에 점차 건강한 생활을 위해 삶의 방향을 수정 중이었던 내게 그들과의 지속적인 조우는 어려웠다. 게다가 츄르는 비싸다.
물론 가끔은 값싼 캔이나, 집 냉장고에서 꺼내온 동물복지 난각번호2번짜리 계란을 깨서 노른자를 종재기에 담아 먹이기도 했다.
샛노란 눈 외엔 칠흑 같이 깜깜한 색의 올블랙냥이, 흰색주황색냥이, 엄마로 보이는 삼색냥이, 그리고 고등어냥이. 녀석들은 남매가 분명해 보였다. 난 사실 달빛 같은 눈동자만 둥둥 떠다니는 올블랙냥이에게 가장 관심이 갔다. 고양이를 키우기 전부터 그런 쌔카만 고양이를 키워보고 싶단 생각이 아직도 그대로 머릿속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땐 코리안숏헤어=길고양이 라는 것도 몰랐다) 그런데 그 녀석은, 어둠과 구분되지 않는 까만 털색만큼이나 수줍음이 많았다. 주변을 서성이다 쭈뼛쭈뼛 츄르를 받아먹긴 했지만, 하여튼간 수줍음이 많은 녀석이었다.
올블랙냥이가 수컷 느낌이 나는 반면 주황색하얀색냥이는 왠지 모르게 암컷 느낌이 난다. 그 녀석은 내가 먹을 걸 주고 있을 때면 처음엔 보이지 않다 중간쯤에 어디에선가 나타난다. 녀석은 내가 뭔가 맛있는 걸 줘도 그렇게까지 막 흥미를 느끼지 않는 눈치다. 하긴, 이미 잘 먹고 잘 돌아댕기는 애들이다. 주변에 사는 단독주택 사람들이 마당에 사료그릇과 물그릇을 놔둔다. 아마 그 사람들이랑은 스킨십도 할지 모른다. 종종 다른 특식도 얻어먹지 않을까.
가장 적극적인 녀석은 고등어냥이다. 이 녀석은 첫 만남 때부터 나와의 거리가 가까웠다. 내가 몸을 조금만 들썩여도 금방 뒷걸음질 쳐버리긴 하지만(고등어냥이를 포함해 그들 모두가 그렇게 행동했기 때문에 나는 그들이 일정거리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꼼짝 말고 있어야 했다. 그리그 그 후에도 움직이면 안 됐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시금 앞걸음질로 다가왔다. 다만 그것은 용기라기보단 츄르에 대한 욕망이라거나 호기심어림 같은 것이었다.
이 얼굴이 작은 고양이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초딩냥이어서(뭐 한 삼사개월 쯤 된 것 같다), 문득 우리 아배붑 어렸을 때를 떠올리게 했다. 너 얼굴이 참 작구나. 아유 귀여워. 라고 했다. 얼굴이 정말 주먹만 했다. 분명 네 마리의 고양이 어릴 때를 다 보아왔는데도 그 작은 얼굴이 신기했다.
그리고 이 고등어무늬의 고양이는 내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가, 날 마주치면 종종 걸음으로 따라왔다. 아직 나를 경계하고 있었으므로 적당히 자동차 밑을 통과해가면서, 서둘러 따라왔다. 날 기억하고 있네. 너 똑똑하구나. 달걀 노른자를 종재기에 담아 팔을 쭉 뻗어, 나와 녀석의 중간 위치에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다음 날엔 츄르를 녀석과 나의 중간 위치에 짜놓고서는 나는 두발 정도 뒤로 물러난다. 기다렸다는 듯 바닥에 발라진 츄르를 쓱쓱 핥아먹는다. 내 쪽으로 더 가까이 츄르를 짠다. 그 다음 츄르 스틱을 그대로 녀석의 입가에 갖다 대어준다. 잘 핥아먹는다. 이때 내가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여선 안된다.
몇 번 주지도 않았는데 날 알아본다는 게 신기하다. 나보다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고양이라서, 문득 착잡한 심정에 사로잡힌다. 지금의 뽀송뽀송함을 영원히 간직하면 좋을 텐데. 저 맑은 눈이 계속해서 지속되면 좋을 텐데. 난 많은 동물 중에서 고양이를 특히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어쩐지, 고양이를 키워선지, 그들의 얼굴이 보여서 마음이 쓰리곤 한다.
아무튼 이 고등어냥이는 제법 의젓하면서도 대담한 구석이 있다. 사람을 경계하는 것을 쉽게 놓지 않는 것도 맘에 든다. 밤 늦게 볼 일이 있어 집을 나설 때, 마주친 너를 보고 집에 다시 들어가 계란 노른자든 츄르든 캔이든 가지고 나올 때, 조용히 건물 그림자 속에서 웅크리고 기다렸다가 가로등 불빛 아래로 모습을 드러내던 너. 사고 당하지 말고 아프지 말고 계속 그렇게 지내면 좋겠다.
MY MAD GAY 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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