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가산디지털단지역. 열차 오는 걸 기다리며 바깥 난간에 기대 서있다. 여길 난간이라 해야 하나. 단어가 기억이 안 나네. 날씨는 몹시 눅눅하고 후텁지근하다. 난간에 기대서 승강장 밖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그런 상상을 하게 됐다. 내가 경찰에 쫓기는 상상.
나는 아주 큰 범죄를 저질렀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어쩔 수 없었다. 난 아주 비참하고 냉혹한 현실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 누군가에 의해 어떤 거대한 사건에 휘말려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붙잡히면 안 된다. 잡히면 다시는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나는 전력질주해 이 난간까지 도달한 후 크게 점프해 승강장으로 넘어와 잠시 고민할 것이다. 계단을 타고 지하철 내부 시설로 들어갈 것인가, 아님 씨씨티비도 없고 경찰의 눈에 띄지도 않을만한 곳으로 계속 달려나갈 것인가. 저 내부로 들어가면 화장실로 직행해 준비되어 있던 실리콘 마스크와 여분의 옷으로 갈아입고 태연하게 다음 열차를 타고 유유히 사라져버릴까. 경찰이 가까워지기 전에 얼른 선택해야 한다.
잡혔다. 잡히고야 말았다. 이제 모든 게 끝이다. 이제 이대로 그들의 손에 끌려가 영영 집에 못돌아올 것이다. 어떡하지. 우리 고양이들. 난 아직 해결해야 할 것들이 많은데. 나 아니면 안 되는 것들이 있는데. 어떡하지. 내가 가장 순수하게 나일 수 있었던… 걔네들은 내가 책임져야 하는데. 나 아니면 안 되는데. 함께 보낸 시간들이… 함께 보내야 할 시간들이… 이대로 가버리면 안 되는데.
나는 내 인생이 종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 그래서 모든 게 엉망진창이 돼버렸을 때, 이제 다시는 그 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때, 가장 마지막으로, 집에 남아 있는 고양이들에게 갈 것이다. 우리 고양이들 얼굴을 하나하나 볼 것이다. 냄새를 맡고 숨결을 느낄 것이다. 그 집에 누워서, 내 마지막을 최대한 깊이, 많이 눈에 담아 놓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너무 슬픈데.
MY MAD GAY 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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