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거지 같았던 내 집안 풍경이 한결 나아졌다. 아직 비울 게 남아 있고 맘 같아선 거실로 옮겨놓은 침대 두 짝도 버려버리고 싶지만 저것들을 버리려면 사다리차를 불러야 한다. 사다리차를 부른다는 건 소심한 나로선 왠지 큰 일을 치루는 느낌이 든다. 돈도 아깝고 말이다. 마침 나는, 잠에서 깨 눈을 뜨면 머리 맡 커다란 창을 통해 들어온 환한 빛이 내 얼굴에 일렁이는 상상을 하곤 했는데 이 집 거실은 어설프게나마 그게 가능한 구조였다.
2. 홀로 연신내 옥탑으로 이사와 독립하게 됐을 때 그 ‘독립’이란 단어가 주는 자유로움이 너무 좋았다. 나에게 독립은, 온전히 ‘내 방식대로’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라는 의미였다. 가구배치도 내 맘대로 해보고 고양이도 키우고 먹고 싶은 거 맘대로 사먹고 가고 싶은 데 가보고. 하지만 몇 년 후 그 의미가 싸그리 퇴색되고 말소되어 더 이상 ‘독립의 자유로움’을 만끽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는 늙어가고 있었다.
3. 오랜만에 독립의 기분을 맛봤다. 어제는 집에 들어가는 길에 미묘한 가슴 벅참 때문에 눈물이 핑 돌았다. 나에게 문제가 있다면 동심이 많다라는 거다. 세상도, 눈 앞의 상대방도 나처럼 동심이 많기를 바란다. 나쁘게 말하면 찌질한 거다. 나는 그런 아이인 채로 늙어가고 있었다. 어제 내가 그렇게 늙어가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4. 사회인이라는 건, 하기 싫지만 해야만 하는 것들을 하는 사람들에게 부여된 칭호다. 내가 잘하는 게 있다. 바로 그런 사람들을 비웃기다. 그 속에 들지 못한 스스로를 바라보며 한 없이 작아지기도 포함.
5. 아무튼 오랜만에, 처음 독립했을 때의 설렘을 느꼈는데, 그건 집안에 켜켜이 쌓인 쓰레기들을 치우고 물건들을 정리하면서부터다. 내 것들이 아닌 물건들이 너무 많았다. 이 전엔 채우지 못해 텅빈 방 풍경이 어설프고 서툴게만 보여 싫었건만, 그 텅 빈 느낌을 지금 나는 그리워하고 사랑하게 됐다.
6. 어제 잠깐 사회인들과 동일선상에 놓여 그들과 동질감을 느꼈다. 그들을 어렵지 않게 대할 수 있다라는 인식이 잠깐 생성됐다가 사라졌는데 그 순간 알았다. 내가 어떻게 하면 사회인이 될 수 있는지. 방법은, 내가, 해야만 하는 것들을 하는 것. 문제는, 그게 뭔지 헷갈리도록 내 동심이 자꾸 방해를 한다는 것. 이 전에 내가 어떻게 그렇게 나답지 않은 삶을 누릴 수 있었던 건지, 돌이켜볼 수록 창피해질 만큼, 나는 분명 동심이 많고 찌질한 게이다.
7. 편집을 하다보면 일정구간에서 진전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구간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이렇게 저렇게 바꿔봐도 똑같은 패턴일 뿐이고 그래서 휴지통으로 옮겨다놓은 걸 다시 꺼내다 써보기도 하고 그냥 아예 통째로 들어내버리기도 한다. 반복반복반복반복. 지금 내가 서있는 구간이 그렇다. 지금 나는 해결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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