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조금씩 내리던 날

이 날을 기억한다. 잘 산책하다 갑자기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아니, 사실 헷갈린다. 저곳에 갔을 때 비가 갑자기 내리기 시작했던 게 몇 번 더 있었던 것 같다. 내 기억 속에 있는 장면과 사진에 찍힌 것이 같은 날인가를 잘 모르겠다.
녀석들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정도는 크게 개의치 않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를 맞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비 갠 후 물기 가득한 풀숲으로 들어가는 건 또 잘했다. 털이 다 젖는데도 기어코...
팔각정 안에서, 조금씩 뿌얘져가는 공기중에 둘러싸여, 저 멀리 나뭇잎들 사이로 보이는 바깥 도시 풍경과 뒷편의 산속 새소리와 빗소리... 그리고 아배붑과 들꽃과 나... 기억 난다, 기억나.